2016년 10월 20일 목요일

[6장] 로맨틱 코미디의 본 고장 나파

행복한 인생의 비결은 바로 우리의 마음에 달렸다. 욕망을 내려놓고 가장 고결한 가치를 추구할 인생의 반전이라는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단순히 미국 와인의 달콤함이 심어주는 판타지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와인을 접할 흔히들 전문가들의 시음노트에 주눅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은 온갖 다채로운 향을 식별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는가 하면서. 향미의 구분을 떠나서도 최소한 와인을 마셔본 ' 정말 좋다'라는 즉각적 반응 만이라도 간절히 원할 때가 있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와인을 탓하기 보다는 자신의 둔감함을 못내 아쉬워하는 경우도 많다. 혼자서만 즐기는 경우는 그래도 다행이다. 문제는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 와인을 들고 가는 경우 어떤 와인을 들고 가야 많은 이들이 흡족해할 것인가를 두고 와인 샵에서 진땀을 빼는 적이 번이 아닐 거다. 내 경험에 따르면 미국 와인을 모임에 가지고 나갔을 때 실패를 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미국 와인이 상대적으로 인기가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이 되는데, 우선 와인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와인을 많이 마셔보지 않은 사람조차도 뭔가 와인의 특징적인 성격을 쉽게 느낄 수 있다는 거다. 굳이 비교하여 프랑스 와인이 조금은 난해한 예술 영화 같은 반면 미국 와인은 재미있고 대중적인 상업 영화 같다고 하면 좀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주 고가에 이르는 컬트(cult) 와인이나 부띠끄(boutique) 와인 등 고급 와인들이 즐비한 미국 와인을 대중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패가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값과 품질을 떠나 와인의 느낌만을 평균화하여 말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이처럼 미국 와인이 대중적 느낌을 갖게 만드는 요인은 또한 여러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겠는데, 일부 와인 전문가들은 강도와 밸런스의 차원에서 설명하기도 한다. 미국의 와인 전문가인 웨스 마샬(Wes Marshall)에 따르면 구세계 와인들에 비해 미국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특정한 향미의 강도가 세서 어떤 경우에는 와인을 구성하는 전체적인 요소들의 밸런스를 깨뜨릴 정도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설사 밸런스가 유지된다 할지라도 특정한 향미가 도드라지게 피어 오르는 경우가 많아 와인 초보자들도 와인의 캐릭터를 이해한다고 인식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강하게 피어 오르는 향미들이 캐러멜이나 초콜렛, 바닐라와 같이 감미가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 미국 와인은 설령 드라이 와인이라 한들 달콤한 느낌을 준다는 스테레오 타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i]

와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의 와인 산지는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오리건 서부 뿐만이 아니라 뉴욕과 뉴저지, 버지니아, 텍사스 등 여러 주에서 재배, 생산된다고 한다. 물론 드넓은 대륙이기에 기후와 토양 등 자연환경이 주 마다 천차만별이고 따라서 주로 재배되는 품종의 차이를 낳았다. 가령 뉴욕 주는 독일과 비슷한 기후를 가졌기에 미국 내 리즐링(riesling)의 본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텍사스는 포르투갈과 유사한 환경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즉 미국 대륙 이곳 저곳에서 유럽 각국 떼루아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씨와 토양 등을 고려했을 캘리포니아 지역 만큼 미국에서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곳은 드물다. 콜롬비아 밸리(Columbia Valley) 중심으로 워싱턴 주도 온화하면서 일교차가 심하여 와인의 복합미를 높이는 좋은 자연 조건을 갖고 있어서 최근 들어 많이 각광받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미국 와인의 간판 스타들은 대부분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Napa Valley)에서 배출이 되어 왔다. 위로는 멘도치노(Mendocino)와 시에라 풋힐스(Sierra Foothills)에서 나파 밸리를 거쳐 소노마 카운티(Sonoma County), 까르네로스(Carneros)로 이어지고, 마침내 가장 넓은 재배 면적을 자랑하는 센트럴 밸리(Central Valley)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체 와인의 90퍼센트 이상이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고 있다.[ii]

하지만 유럽인들에 비해 미국인들이 와인을 대중적이고 보편적으로 즐기는 것은 아니었다. <와인 바이블>에 따르면 1998년 기준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11퍼센트가 미국 내 와인의 88퍼센트를 소비했다고 하니 미국에서는 와인 소비가 일부 소수 국민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 이후 와인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하고 와인 산업의 대중화가 본격화 되면서 소프트 드링크 다음으로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로 자리잡게 된다. 와인의 인기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의 역사는 170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멕시코로부터 이주해온 스페인 개척자들과 프란체스코 회원들이 일찍이 대중들을 위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밭을 일구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와이너리가 활성화된 두 번째 계기는 1849년 시에라 풋힐스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부터 이다. 소위 말하는 골드 러쉬가 일어났으나 금광을 찾아 온 사람들 대부분은 금광이 고갈된 이후 캘리포니아에 정착하여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와 함께 몇 명의 선구자적인 유럽 이민자들의 리더십에 힘입어 1880년대까지 캘리포니아의 와인 산업이 번성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전성기도 잠시였을 뿐 그 이후 와인 병충해인 필록세라(phylloxera)와 금주법, 세계 대전, 그리고 경제 대공황 등으로 와인 산업이 답보 상태에 이르렀던 것이다.[iii]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에도 필록세라가 뒤덮기 시작했다. 이에 프랑스의 와인메이커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신세계로 이주하게 되면서 미국 와인이 다시 도약하게 된 계기가 마련되었다. 필록세라는 비록 진드기 류의 병충해이지만 세계 와인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꿔 놓은 존재다. 신세계 와인이 발전하게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와인을 대체하기 위해 맥주 산업이 융성하게 요인이 되기도 했다. 먼저 필록세라를 경험한 미국에서는 특히 뉴욕 주에 병충해에 저항력이 강한 포도 품종이 있었다. 유럽 전역이 필록세라로 뒤덥혔을 유럽 포도 품종들이 살아남게 방법은 유럽의 와인메이커들이 가지고 유럽 포도 품종을 저항력 강한 미국의 품종과 접을 붙임으로써 가능했다. 필록세라는 뿌리만 상하게 하는 병충해이므로 저항력이 강한 미국 포도의 뿌리 위에 유럽 포도의 상부를 얹어서 접을 붙이는 것이다. 이러한 수직적 접붙이기를 그래프팅(grafting)이라고 한다. 실제로 새로운 포도원을 설립해서 포도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그래프팅 기법을 통해 포도나무를 심는 것이라 한다. 외에도 빈도수는 적지만 미국과 유럽의 품종을 수평적으로 결합을 하여 새로운 포도종을 만들었던 하이브리딩이라는 방법도 필록세라에 대처하는데 활용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프랑스가 원산지인 품종들이 미국에 전파되었던 것이고 프랑스 역시 그들의 품종을 보존할 있었다.[iv]

금주법과 경제대공황으로 인해 교착상태에 있던 미국 와인 산업은 1970년대 이르러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보르도 와인에 승리했던 파리의 심판을 계기로 세계 와인 산업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레드 와인의 경우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보르도 품종을 비롯하여 시라, 피노 누아 등을 기반으로 와인을 생산, 원산지인 프랑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만 미국 고유의 품종이라는 진판델(zinfandel) 역시 미국인들이 자부심을 느끼며 사랑하는 미국 와인의 얼굴이다. 최초의 기원은 크로아티아에 있다고 보고 DNA 분석을 통해 이탈리아 풀리아(Puglia) 지방의 프리미티보(primitivo) 동일한 유전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진판델은 특유의 복합적 캐릭터가 담긴 진득한 풀바디의 와인으로 빚어진다.[v] 그도 그런 것이 송이 포도알들의 익는 속도가 달라 수확 시점에 농익은 포도 알과 설익은 포도 알이 공존하여 독특한 복합미를 낳는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와인의 세계에 빠지게 계기를 와인도 진판델 품종이 이상 블렌딩된 것이었다. 세계 지역 품종을 시음해보다가도 어쩌다 레드 진판델 와인을 만나면 알싸한 사랑 같은 느낌이 스물 스물 피어나곤 한다.
  
예술영화와 상업영화가 극명하게 갈리는 장르는 아마도 로맨틱 드라마일 것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특유의 위트와 유머를 녹여내어 남녀 간의 로맨스를 리듬감 있게 이끌어가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영역을 독보적으로 개척해 왔다. 나의 세대가 기억하는 미국 로코 영화의 시작은 아마도 내가 대입 학력고사를 마쳤을 즈음 개봉했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 이었던 거 같다. 남녀 우정과 로맨스 사이를 미묘하게 줄타기 했던 영화의 주제라던가 주인공 캐릭터와 배우들의 연기력 등이 조화를 이루어 마치 상큼한 레몬케이크를 먹고 난 뒤의 느낌을 주었던 영화로 기억된다. 게다가 해리 코닉 주니어(Harry Connick, Jr.) 비롯한 재즈 보컬리스트들의 음악이 뉴욕의 풍광과 기막히게 어우러졌다. 남녀 주인공이 던졌던 질문, 과연 남녀 사이의 우정이 이성 간의 감정으로 발전되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될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은 영화를 보지 않았던 이들에게 까지도 회자되며 20대의 청춘들에게 중요한 대화소재로 자리 잡았었다.

개봉했던 걸로 기억하는 <시애틀의 이루는 >에서 내 관심을 끈 요소는 라디오였다. 매스 미디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던 때였기 때문지는 몰라도 라디오 음악 스테이션에 보낸 사연이 매개가 된다는 영화의 플롯이 사실 그다지 독특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드넓은 대륙인 미국의 쪽 끝과 쪽 끝에 각각 사는 남녀 주인공이 이어질 수 있는 매개가 라디오라는 설정이 물론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에 나온 영화이기는 하였지만 <유브 갓 메일>과 같은 인터넷을 매개로 한 러브스토리 보다 훨씬 의미 있게 다가왔다.

90년대가 나의 20대라면 2000년대는 한층 성숙해 졌어야 할 나의 30대 시기였고 이 때 만난 영화가 바로 <러브 액츄얼리>였다. 나는 아직도 나의 베스트 로맨틱 코미디 하면 서슴없이 이 영화를 꼽는다. 영국을 무대로 한 영화는 그 몇 년 전 개봉했던 <노팅힐>도 있기는 했지만 <러브 액츄얼리>는 내가 영국 현지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우연히 극장에 들러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관람하고 감동을 받았던 영화이기에 더 가슴 속 깊이 남아있다. 여러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엮어가는 <러브 액츄얼리>는 어느 러브 스토리 하나 고결하지 않은 것이 없고, 보통 사람들의 삶 자체가 영화이겠구나 싶은 생각마저 들게 했던 로맨틱한 영화 그 자체였다. 역시 영화의 성공은 연출력에 힘입는 미장센 보다는 스토리 자체에 좌우된다는 내 믿음의 타당성을 다시금 확인하기도 했던 영화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에 있었다. 나의 로코 여정은 <러브 액츄얼리> 그 이상을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우연히도 그 영화를 보고 난 후가 내가 대학교수로 임용되는 시점과 얼추 비슷하게 겹치는데 결국 나는 교수 생활 십 년 동안 나의 로코 여정에 있어서 아무런 진척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기억하기로 로코의 거장 우디 알렌(Woody Allen)이 감독한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도 보았었고, 파리를 배경으로 한 비슷한 옴니버스 형식의 로맨스 영화도 역시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제목 조차 기억 하지 못할 정도로 내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지는 못한 거다. 지난 십 년 동안 갑자기 연출력이나 연기력 또는 각본의 파워가 쇠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고, 내가 너무 각박하게 사회 생활을 해왔다는 증거이지 싶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점차 감정이 메말라 들어가 머리로는 영화 행위를 얼추 기억을 지 언정 가슴이 영화의 주제도 장면도 스토리도 기억을 하는 거다. 인간의 메모리라는 것이 뇌에 있는 게 아니라 심장에 있는 건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그러고 보면 영화로부터 감흥을 받는 다는 것은 관객 자신이 영화가 주는 감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봐야 옳을 거다. 마음이 닫혀 있을 경우 아무리 감동적이고 로맨틱한 영화라 한들 관객 가슴에 흔적을 남기기는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은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관객들의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는 뜻이 된다. 미국 로코 영화의 어떤 면이 관객들 마음의 빗장을 열었던 걸까. 내가 보았던 영화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공통점을 찾아가 시작했, 결국 내가 발견한 공통점은 한결같이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난 다는 점이었다. 넓은 범주에서 멜로물이기는 하나 로맨틱 코미디 역시 희극의 한 장르로 보아야 할 것이고, 희극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새로운 발견은 아니다. 하지만 여하튼 간에 어차피 영화는 허구이고 관객들은 판타지를 추구할 터인데 슬픈 결말보다는 행복한 결말에 더 행복해 한다는 상식 같은 진리가 미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대중적 인기를 이끌어온 동력일 것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마음 한 켠이 개운치 못했다. 마치 숙제를 말끔히 마쳐놓지 못한 모범생의 기분이랄까 싶은 그런 앙금이 내 마음에 남아있었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얼마만인지 정확한 셈은 어렵지만 정말로 오랜만에 로코 영화를 보러 극장 나들이를 하기로 하였다. 이런 게 바로 인생사의 우연이지 싶다. 박스 오피스 상위에 랭크 된 영화를 우연히 검색하던 중 <한번 해피엔딩>이라는 제목의 로맨틱 코미디가 올라있는 것이었다. 원제는 전혀 다긴 하지만 해피엔딩과 어떻든지 연관이 있기에 배급사가 그렇게 제목을 바꾸었겠지 하는 생각에 서둘러 극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미국 로맨틱 코미디의 대중적 인기를 해피엔딩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후 개운치 않은 뒤끝이 남아서였을까, 찾는 자에게 길이 있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이제껏 보았던 영화들에 비해 그다지 호소력 있지는 못했으나 <한번 더 해피엔딩>을 보면서 답을 얻었으니 바로 해피엔딩이 그냥 해피엔딩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한 때 리우드에서 명성을 얻었으나 현재는 아무도 인정을 해주지 않는 한 퇴물 극작가는 백수 생활을 끝내고자 마지 못해 뉴욕 주 북쪽 시골 마을에 있는 작은 대학교에서 강사 생활을 시작한다. 재능은 타고 나는 것일 뿐 교육에 의해 발달되지 않는 다는 신념을 가진데다가 삶의 긍정적 에너지가 고갈되어 권태롭게 생활하던 중 학교에서 만난 한 여인에 의해 그리고 학생들에 의해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열고 가르침의 가치를 발견해 간다. 그러던 중 마침내 그토록 원리우드의 제안을 받아 다시금 큰 명성을 얻게 될 순간, 그는 삶의 긍정적 동력에 눈뜨게 해준 여인을 떠올렸고 그 길로 리우드의 손길도 뿌리친 채 여인이 있는 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발길을 돌린다는 내용이다. 그렇다. 그냥 해피엔딩이 아니라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부와 명성과 인생의 빅 히트를 다 내려 놓고 오직 사랑이라는 가치만을 쫓아 일구어 낸 인생의 대 반전 이었던 거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두 장르가 혼합된 영화에 대해 우리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궁극으로 생각했기에 정작 희극이라는 사실에는 많이 주목하지 못했다. 이제껏 내가 본 로코 영화들 속 캐릭터들이 한결같이 해피엔딩으로 끝맺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기와 욕망을 내려놓고 사랑이라는 순수가치를 추구한 데 따른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욕망을 내려 놓고 고결한 가치를 추구하는 , 그것이 바로 미국 로맨틱 코미디가 보여준 인생의 반전이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얻어 낸 해피엔딩이 바로 대중들의 마음의 빗장을 열고 많은 감흥을 일으킨 요소라는 사실을 발견하였을 때 나는 드디어 숙제를 말끔히 마쳤다는 자신감에 비로소 웃음지을 수 있었다.

한 유명 와이너리의 소유주를 인터뷰한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와인메이커를 고용하고 나서 바로 와인을 만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3년 동안 역사, 철학, 문학 등 인문학 전반에 관한 교양을 우선 쌓도록 한다고 한다. 인문학자 수준의 전문가가 되었다고 판단되었을 때만이 와인 양조를 허락한다는 것이다. 모든 와이너리들이 이러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와인메이커가 가진 삶의 철학이 그대로 와인 양조에 반영이 된다는 주장을 전적으로 신봉한다. 그리고 미국 와인이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는 이유를 미국 리우드의 영화에서 드러난 삶의 이상향에서 찾아본다. 미국 와인이 우리에게 유독 달콤하게 다가오는 것은 다름아닌 고결한 가치를 추구하는 소박한 해피엔딩의 정신에 있지 않나 싶은 것이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리우드가 위치한 곳 역시 캘리포니아라는 점도 나파의 와인들이 로코 영화의 기운을 반영하고 있다는 나의 생각을 뒷받침한다.

물론 미국의 현실은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적 모순을 보여주기도 것이다.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같은 소설에서 현실 미국의 비참한 단면을 확연히 느낄 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이들이 미국 로코 영화를 비현실적이라며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녹녹지 않은 현실때문에 더더욱 미국 로코 영화가 순수 가치를 지향하는 삶을 동경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19세기 중반 금광 개발업자들이 정착하여 포도를 재배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이미 욕망을 버리고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철학을 터득하게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말 그대로 일확천금이라 표현되는 욕망을 추구했다가 금이 고갈된 사실을 목격하고 삶의 허망함 경험한 후, 오히려 순수한 가치를 추구할 때 행복이 깃든다는 깨달음을 캘리포니아의 와인 선조들은 일찍이 얻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하기에 1960년대와 1970년대 캘리포니아의 와인 붐을 이끈 사람들은 투자은행가와 사업가, 교수, 변호사, 의사 등 이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의 와인 산업은 대대로 가업으로 내려져오는 와인 제조 전문가들이 이끌었던 것과 달리 캘리포니아는 자본주의 사회의 정점에서 욕망이 낳는 부작용을 경험해 본 전문직 종사자들이 자연 속에서 로맨틱한 인생을 누리기 위해 이끌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vi] 여하튼 삶의 긍정주의, 부와 명성이라는 욕망을 버리고 고결한 가치를 추구하는 해피엔딩의 정신이 캘리포니아의 와인메이커들을 통해 정성스레 와인으로 빚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러한 와인 감동을 느끼는 한국인들 역시 자기 욕망을 극복한 가치의 추구라는 데에서 인생의 해피엔딩을 갈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명성을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명성을 얻는 해피엔딩의 아이러니를 와인 잔을 부딪히며 경험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며 나는 오늘 창고 속에서 먼지 쌓여갔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비디오 테이프들을 하나씩 꺼내 진열장에 장식하기로 마음 먹었다.



[i] Marshall, W. (2010). What’s a Wine Lover to Do? Artisan Publisher.

[ii] MacNeil, K. (2001). The Wine Bible. Workman Publishing. New York.

[iii] MacNeil, K. (2001). The Wine Bible. Workman Publishing. New York.

[iv] Adams, D. (2010). Introduction to Wine and Winemaking Lesson 4: Growing Wine Grapes. The Regents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v] Adams, D. (2010). Introduction to Wine and Winemaking Lesson 3: Types of Grapes Used for Wine. The Regents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vi] MacNeil, K. (2001). The Wine Bible. Workman Publishing.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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