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0일 목요일

[4장] 오크의 마법

와인메이커들이 오크 숙성을 하는 것은 단순히 와인의 향미를 좋게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신이 준 선물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는 일종의 성스런 의식 같기도 하다. 그런 오크가 나에게도 마법을 걸었다.


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비로소 자연에 대한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지 나는 굳이 분류하자면 도시 문화를 선호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사무실 화병에 내가 직접 꽃을 사다 꽂아 놓은 적도 드물고 가끔씩 받는 꽃다발 선물도 시들어가는 모습이 안쓰럽다는 핑계로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대신 잡초같이 강한 여러 종류의 식물들을 마치 생명력이 그들에게 달린 것인 동기부여를 하며 가꾸어 왔다. 유독 자연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던 내가 와인의 향미를 분석하는 연습을 하면서 길가에 심어진 나무들과 꽃들이 하나 둘씩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끔 직접 손길이 닿을 있을 때는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이름을 찾아보기도 한다. 와인을 숙성시키는데 사용하는 오크 나무를 한국어로 번역을 해보니 참나무 혹은 떡갈나무 라고 하는데 번역을 한다한 들 어떻게 생겼는지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간으로서의 부작용을 경험하며 요즘 아이들은 나처럼 삭막해지지 않고 자연과 친해질 있는 야외 학습을 억지로라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무슨 문제든 가르치는 입장에서 생각하는 직업병인가 싶기도 하다.

사실 와인이 주는 즐거움 하나는 와인 잔을 코에 가져다 대어 특정한 향을 알아채었을 때다. 마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듯한 느낌이기도 하고, 나의 시음 능력이 향상되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에 대해 일상적으로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머리 속에 사물의 냄새가 어떠한지 입력이 되어 있어야 와인을 만났을 때도 향을 판별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을 멀리했던 부작용으로 세세한 꽃과 나무, 자연의 냄새를 판별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얻은 깨달음이다. 물론 와인 전문가들의 시음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와인에 존재하는 50 가지 향을 체험해 있는 아로마 키트도 존재한다. 아예 모르는 것보다는 이런 아로마 키트로 훈련을 하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평상시에 항상 자연에 마음을 열어두는 것이 인공적이지 않고 돈도 절약되어 훨씬 좋은 같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와인 시음 노트 들을 보면 정말 이런 향들이 와인에서 풍긴다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향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미 알고 있는 향의 경우에는 반갑게 알아챌 있지만 생전 경험하지 못한 향일 경우에는 나의 코만 인식할 머리 속에서는 정체불명의 향으로 남아 있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가령 제비꽃이나 까치밥나무, 삼나무 향과 같이 흔하게 접하지 못해 메모리 속에 저장 되어 있지 않은 자연의 향을 말한다. 와인 시음 노트를 세밀히 적을 때는, 장미 향의 경우 장미인지 붉은 장미인지, 시트러스 계열 과일도 심지어 귤인지 오렌지인지 레몬인지를 구분할 정도로 매우 세분화 시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와인을 처음 접하는 경우 이렇게 세세한 향미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의 경지이다. 그래서 나는 비슷한 계열의 향을 하나로 묶어 항목별로 구분을 하기 시작했다. 가령 과일의 경우에는 푸른 과일, 붉은 과일, 검은 과일, 노란 열대 과일 등으로 구분했다. 뿐만 아니라 잔디, 이끼, 흙과 같은 위의 냄새들, 강철, , 광물류, 그리고 아몬드, 호두, 땅콩의 견과류와 같은 구분법을 말한다. 향도 종류별로 다양하지만 그냥 뭉뚱그려 플로럴한 느낌으로 와인을 접하곤 하였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일종의 연역적 시음법이라 있다. 와인 초보자였던 나만의 시음법인 알았는데 나중에 와인 관련 서적을 찾아보니 일부 와인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지혜로운 시음 팁이기도 하였다.[i]

한번은 어느 미국 와인을 열어 보니 오크 향이라 믿겨지는 향이 강하게 피어 올랐다. 생전 오크 냄새도 맡아봤으면서 그렇게 판단한 데는 아마도 코르크 마개 덕분이었을 게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코르크 마개도 오크 나무의 외피로 만들어진다고 하니 관련이 없지는 않다. 마침 미국 와인 이야기를 꺼냈으니 말인데 프랑스 중심 구세계 와인에 비해 미국 와인을 특징 지우는 성격 하나가 강한 오크 향이다. 샤르도네(chardonnay) 같은 화이트 와인 품종도 원산지인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는 오크 숙성을 안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반면 미국 와인들에서는 대부분 오크 처리의 특징이 강하게 느껴 진다. 오크 숙성을 통해 얻어지는 향미는 다양하지만 미국의 와인 소비자들이 오크 향을 사랑해서인지는 몰라도 미국 와인메이커들이 신경을 쓰는 향미임은 분명하다. 강한 오크 향은 여러 가지 이유에 기인하는데 해마다 새 오크통으로 숙성을 시킨다는 점, 아메리칸 오크통이 프렌치 오크통에 비해 숙성 결과 오크 향미가 강해진다는 점 등도 한몫 한다. 아무튼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에 걸친 오크 숙성을 통해 레드 와인은 특유의 떫은 탄닌이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발효해서 어리고 닫혀있는 포도의 향미들이 원숙한 변화를 겪는다.[ii]

이렇게 숙성이 이루어질 있는 이유는 바로 오크 나무가 숨을 쉬기 때문이다. 바깥의 공기가 나뭇결을 통해 유입되어 산화 작용이 일정 정도 이루어지는데 실제로 처음 투입된 발효 액의 양이 숙성이 끝난 후에는 아주 미세한 양만큼 줄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줄어든 양을 '천사의 이라 이름 붙인 와인메이커들의 센스는 어찌 보면 성스럽기까지 하다. 숙성을 한다는 개념도 오크 외피로 만들어진 코르크 마개를 통해 공기가 유입되어 와인의 산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호주와 같은 일부 신세계 국가들의 경우 소비자들의 편리함을 위해 코르크 대신 스크류 캡을 마개로 사용하는데 경우에는 와인이 외부 공기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숙성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아무리 편리하다 한들 나는 스크류 캡이 싫어서 맛있는 호주 쉬라즈 품종 와인을 포기한 적이 번이 아니다. 오프너로 정교하게 공들여 코르크 마개를 때의 가슴 두근거림도 없고, 마개 한쪽 와인 접촉 부분의 향기를 맡는 재미도 앤티크한 와인의 기품도 없어져 보인다. 더군다나 스크류 캡을 사용한 와인메이커들은 천사들에게 방울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인색함을 드러내는 같아 호감이 떨어진다.

어쩌다 천사의 몫이란 성스러운 명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보니 과거 와인메이커들의 마음을 읽어 보게 된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와인은 신이 창조한 자연으로부터 받은 귀중한 선물이라 믿었을 것이고 신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이 와인의 일부를 봉헌한다는 신념으로 이어졌을 같다. 와인의 고장이라고 하는 프랑스에서 얼마나 자연을 숭고하게 생각하는지는 그들의 언어를 통해 엿볼 있다. 우리는 보통 와인을 제조하는 사람을 일컬어 와인메이커라는 영어단어를 사용하는데 프랑스에는 이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와인은 인간이 빚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다는 믿음 때문이다. 유일하게 비슷한 단어는 부르고뉴에서 주로 쓰는 비녜롱(vineron)인데 조차도 정확한 의미는 포도나무 재배자라고 한다. 반면 프랑스어인 떼루아에 상응하는 영어 단어가 없다는 사실 역시 테이스팅 산업은 발전했으나 와인을 주도적으로 생산하지는 않는 영국에서는 결코 표현할 없는 자연의 심오한 파워를 내비친다. 토양, 경사도, 태양, , 풍속, 안개빈도, 평균온도 등을 종합한 어떠한 것이 떼루아로 와인 양조를 통해 자연의 숭고함을 일상적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다소 요원한 개념이기 때문이다.[iii]

자연에 대해 다소 무미건조한 감정으로 일관했던 내가 와인을 계기로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해 느끼기 시작한 것을 무척 다행으로 생각한다. 어찌 보면 우리는 부모에게서만 받을 있는 부성애, 모성애를 자연으로부터 받으며 자라는 자연의 후손들이 아닌가 싶다. 세상이 각박해서인지 아니면 인간의 도리인지는 몰라도 인간 관계는 항상 주고 받기의 룰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모의 품을 벗어나기 시작했을 무렵 어렴풋이 깨달았다. 인간 사회에서 조건 없는 사랑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 유일했고 이제는 내가 나이 들고 약해져만 가는 부모를 보살펴야 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어딘지 모르게 어릴 마냥 의지하던 품이 그리웠던 거 같다. 다행히도 자연이 내게 드넓은 품을 내어주며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 나는 마치 신의 현존함을 깨달은 신실한 종교인의 마음을 듯했다. 나는 아직 종교적 신념이 확고하지 않아서 인지 신의 손길이 사람들에게 뻗어있음을 깨닫지는 못했으나 요즈음은 손길은 다름아닌 자연이겠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하기에 사람이 죽어서 흙이 된다는 말이 결국은 자연이라는 부모의 품으로 되돌아 간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혼자만의 위로인지는 몰라도 지인의 죽음에 대해 마냥 슬퍼하지는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미스터 새터데이 나이트>라는 영화의 장면이 기억난다. 빌리 크리스탈이 무명 코미디언으로 출연했던 같은데, 번은 장례식장에서 그가 추도사를 하여 죽음을 애도하며 슬픔에 젖어있는 사람들로부터 환한 웃음을 자아 내는 장면을 연출했다. 비록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삼류 코미디언이지만 그의 유머는 가장 비통한 순간에서 조차 웃음을 이끌어 내는 가슴 따뜻한 일류 예술이 아니던가 생각하는 나의 눈에는 감동의 눈물이 흘렀으니 무슨 아이러니인가. 지금은 그가 장례식장을 웃음 바다로 만들 있었던 것도 그의 위트에 슬퍼하던 사람들이 호응할 있었던 것도 모두 죽음이란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공감대가 은연중 형성되었기 때문 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알게 사실인데 사람이 죽어서 장례를 지내기 위한 관을 사용하는 나무 하나가 바로 떡갈나무, 오크라 한다. 처음 미국 유학 갔을 미국인 친구들 커뮤니티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서른 되는 인원이 주말 저녁에 야외로 나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머쉬멜로우를 구워먹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보내곤 했다. 어느 친구가 수수께끼가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만드는 사람은 필요로 하지 않고 필요로 하는 사람은 사용을 하지 않고 사용을 하는 사람은 알지를 못하는 어떤 물건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마침 옆에 있던 친구가 맞춰 알게 되었는데 정답은 바로 장례식 때 쓰는 . 그때는 그저 수수께끼 속의 정답으로만 존재하던 관을 어느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 사용할 사람을 위해 준비를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중년의 나이가 되고 보니 은사님들이나 친척 어른들 연로하신 분들이 한 분씩 돌아가셨다. 다행히도 나의 부모가 건재하기는 하지만 사람의 운명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항력이니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결국은 이것도 나중에 내가 받을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인가 싶어서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 사회의 관례에 따라 부모의 장수를 기원하며 수의를 마련해야 하는 나이가 되니 자연스레 죽음이 마음 속에 발짝 다가온 만은 분명하다. 사람의 시신을 묻는 관이 오크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들었을 , 와인이 나에게 오크는 새로운 탄생이라는 의미를 이후였기 때문인지 몰라도 죽음이 한결 담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버킷리스트가 유행하였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 보는 것. 와인에도 버킷리스트가 있으니 이름하여 죽기 전에 마셔보고 싶은 와인 리스트를 말한다. 요즈음은 분야별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여 일종의 마케팅 기법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와인 버킷리스트 역시 모르던 와인 혹은 인기 있는 와인을 알게 해준 면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하지만 개인의 기호와 전혀관하다. 해서 나는 와인전문가로 명성을 얻는다 한들 섣불리 마셔봐야 할 와인 리스트를 작성하 남들에게 건네고 싶지는 않다. 신이 인간의 외형을 저마다 다르게 만들어 놓았듯이 인간의 삶, 인간의 발자취 역시 제각각 이기 마련일 거다. 따라서 죽음에 앞서 해보고 싶은 일들도 사람들마다 제각기 다를 테니 버킷리스트의 정답은 결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한 가지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고 남들도 죽기 전에 꼭 해봤으면 하는 일은 나에게 그리고 남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준 자연에게 반드시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거다. 때로는 양식이 되어 때로는 맑은 공기를 만들어 주어 때로는 쉼터가 되어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유지해주는, 이른바 부모와 같은 사랑을 아낌없이 자연. 하지만 인간들은 고마움을 알기는커녕 오히려 자연을 훼손하고 짓밟는 일을 일삼아 왔다. 배은망덕한 자손들이지만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인 사랑을 베푸는 자연은 올 봄에도 어여쁜 꽃을 피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올해는 유독 벚꽃이 일찍 피어서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이 다 함께 만개하였다. 휴일을 맞아 부모님과 함께 꽃 길을 산책하였고, 팔순을 넘기신 아버지는 늙으니 꽃이 왜 그리 좋은지 모르겠다며 어린 아이 같이 발그레한 표정으로 봄 꽃을 마구 즐기셨다. 시골에서 자라 온갖 나무며 들풀, 꽃들을 죽 궤고 계신 아버지는 아마도 나보다 자연에 대한 감사함을 더 절실하게 느끼고 계실 거다. 노인들이 나이가 들면서 어린 아이 같이 된다 함은 아마도 자연이라는 부모의 품에 돌아가게 될 날이 가까워 오기 때문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나를 맡기고 가게 될 자연에게 미리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으셨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으레 부모 자식 간에 존재하는 앙금이 나에게도 있었는데 봄 꽃을 즐기는 늙으신 아버지를 바라보며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은 자연이 내게 준 선물 같았다. 아마도 오크가 내게 걸어 놓은 마법인가 보다 생각했다





[i] Marshall, W. (2010). What’s a Wine Lover to Do? Artisan Publisher.

[ii] Marshall, W. (2010). What’s a Wine Lover to Do? Artisan Publisher.

[iii] MacNeil, K. (2001). The Wine Bible. Workman Publishing: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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