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0일 목요일

[13장] 에필로그

 
사한다
와인이 세계관을 변화시켰다고 독백을 다른 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금은 우려된다. 내가 너무 와인을 미화하거나 과장한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한다. 그래 봐야 결국 잔인 와인을 두고 온갖 인간사를 풀어낸 것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와인에 관한 솔직한 독백을 것에 대해 후회가 없다. 독백을 마쳐가는 지금 나의 눈앞이 조금은 트인 같다는 기분 때문이다. 와인을 매개로 인류의 삶에 대해 조금은 배운 같다는 뿌듯함이 생긴다. 내가 독백을 무사히 마칠 있게 된 것에 대해 그리고 배움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 것에 대해 와인 선구자들에게 먼저 고마움을 보낸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초창기에는 고난이 따르기 마련이다. 힘든 환경과 어려운 조건에서 자신의 소신만 믿고 노력했던 선각자들이 있었기에 후세의 우리가 보다 편한 환경에서 즐거움을 나눌 있게 것이다. 그들이 직접 남긴 혹은 후대의 계승자들이 집필한 책들 덕분에 나는 그들과 너무나도 소중한 대화를 나눌 있었다. 시공간을 초월한 진취적 여정이었다. 진심으로 감사한다.

배우고 싶다
사람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다 보니 은연 중에 배우는 위치와는 거리에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질문을 하기 보다는 받는 입장이고 사람들은 으레 내가 많은 것을 알고 있으리라 기대한다. 기대를 받다 보니 실망을 시킬까 두려워 어느덧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정말로 솔직한 심정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배우는 사람이고 싶다는 거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말끔히 떨쳐버리고 싶고 나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쪼르르 달려가 답을 구할 수 있는 멘토를 갖고 싶. 그런데 솔직히 내가 배우고 싶은 진짜 이유는 나의 도전의식이 안일한 관성을 용맹하게 물리치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 학자의 길에 접어들 때 평생 공부를 해야 하는 직업이라 생각하고 선택을 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한국의 교수 사회는 내가 입고 있는 교수라는 페르소나를 당장이라도 벗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기득권 사회의 구태를 보여준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나도 편안한 삶에 그대로 안주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기는 지금 나는 배우고 싶은 열망에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다행이다.

자락의 미소와 추억을
나는 사람들이 와인을 단순하게 즐겼으면 좋겠다. 가식도 허영도 체면도 아닌 힘든 업무를 끝내고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때로는 인생의 동행인들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며 와인 잔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가 와인을 처음 접했을 전문가들이 풀어낸 현란한 지식에 압도당했던 경험을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나의 독백은 사람들이 와인이 주는 여유를 통해 스스로를 보듬기를 원했던 것이지 내가 가진 지식을 교만하게 뽐내려는 것이 단연코 아니었다. 만일 나의 의도가 그렇게 받아들여졌다면 내가 반성을 해야 것이다. 나의 독백을 들은 사람들에게 내가 희망하는 행동은 가지이다. 하나는 그들의 흐뭇한 미소이고 하나는 어떤 와인이든 접하게 되었을 나의 독백을, 내가 독백했던 사실만이라도 기억해 주길 바란다. 미소를 짓는 다는 것은 나의 독백이 그들의 가슴에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므로 감동적이다. 기억을 한다는 것은 나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추억이 되었다는 것이라서 운치가 있다.

감사한다
이 세상의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감사하고 싶다. 혹은 인터넷 공간 어딘가에서 유연히 부딪힌 이름도 모르는 익명의 와인 블로거들에게도 감사하고 싶다. 학계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인생을 사는 슬기로운 지혜는 나이와 학력을 불문하고 나에게 깨달음을 준다. 어느 새 사람을 간판과 명함으로 판단하곤 하는 세태가 되었지만 깨달음을 주는 데는 어떠한 자격증도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벌거벗은 본질이 얼마만큼 순수하느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나는 나의 단골 주유소에서 일하는 직원으로부터 고객관리의 본질을 배웠다. 내가 다니는 미용실에서 일하는 20대 후반의 헤어 디자이너에게서는 아랫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태도를 배웠다. 나는 로버트 파커도 신뢰하지만 내가 가는 단골 와인 아울렛 매니저의 말도 무척 신뢰가 간다. 배움은 나이가 많고 간판이 좋은 사람에게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모든 이들로부터 나는 삶의 이치를 배운다. 직접 만나지는 못해도 내 독백을 듣고 와인을 사랑하게 될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도 감사한다. 언젠가는 그들이 내 인생의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주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순수만큼 희망찬 삶의 동력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언젠가 그들이 돋보이는 와인 애호가로 거듭나리라고 믿는다. 언젠가 그들이 독백을 들려줄 때 나는 제일 앞줄에 가서 앉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경청하고 싶다. 그리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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