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0일 목요일

[3장] 아마로네의 역설


창의성의 다른 이름은 바로 인격이다. 이러한 명제를 나는 이탈리아 와인, 중에서도 아마로네 와인을 마시며 발견했다. 우리는 아마로네가 우연히 탄생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배경에는 필연적으로 만들어질 밖에 없었던 요소가 담겨 있다. 우연과 필연의 역설이다.


이탈리아에 여행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지역 색이 참 강한 나라라는 생각을 한다. 가는 도시마다 서로 다른 건축양식과 음식,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 와인도 마찬가지인데, 처음에는 몰랐지만 각 지방의 와인을 대충은 맛보게 된 지금, 한 나라에서 이처럼 판이하게 다른 성격의 와인을 생산한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 와인을 즐기기 시작했을 때 산도가 높은 와인이 싫어서 이탈리아 와인을 피해가던 중 소개받은 것이 아마로네(amarone) 와인이었다. 정식 명칭은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Amarone della Valpolicella) 인데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Veneto) 지방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실키한 질감과 목젖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감미가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베로나(Verona)가 위치한 지방의 대표 와인이라는 사실이 이 와인을 더 로맨틱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아마로네 라는 단어의 뜻은 이탈리아어로 맛이 쓰다는 뜻이라고 한다. 드라이 와인에 속하기 때문에 쓰다는 뜻의 이름을 붙인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 와인을 마셔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감미가 느껴진다고 평한다. 그도 그런 것이 스위트 와인을 발효하다가 실수로 발효를 멈춰야 하는 시점을 넘겨 포도의 당이 전부 알코올로 전환되어 만들어진 우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베네토 에서는 레치오토 델라 발폴리첼라(Recioto della Valpolicella) 혹은 흔히들 레치오토(recioto)라는 스위트 와인을 만든다. 아파씨멘토(appassimento)라는 특별한 포도 건조법을 이용하여 거의 건포도와 비슷하게 포도를 바짝 말려서 당 함량을 높인 다음 발효를 하는 방법이다. 포도의 당 성분이 발효가 되어 알코올이 되는데, 스위트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발효를 중간에 중단하여 잔당을 남겨 단맛이 나게 만든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양조 과정의 실수로 발효를 중단하지 않고 시간을 넘겨 당분이 모두 알코올로 전환되어 바로 아마로네 와인이 탄생하였던 것이다. 레치오토를 만들던 양조자가 맛을 보니 잔당이 남지 않아 쓴맛이 느껴졌기에 아마로네 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드라이 와인의 양조 과정과 비교할 때 건포도가 가진 높은 함량의 당분이 완전 발효되었기에 알코올 농도가 높아서 평균 15퍼센트 이상을 웃돈다. 이렇게 탄생되어 베네토를 대표하는 드라이 와인이 되었지만 그 뿌리는 단맛이 농축된 건포도에서 출발을 했기에 바디감도 무겁고 감미가 느껴지곤 한다.[i] 한 번은 와인에 익숙하지 않은 대학 동창들 모임에 아마로네를 가지고 나갔는데 흡사 머루주 같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과학사를 공부해보면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명적 이론들은 우연히 발견되거나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던 뉴턴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기차역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하지만 나는 얼핏 훑어본 과학의 역사에서 그리고 아마로네 탄생의 비화에서 우연과 필연의 오묘한 역설을 공히 발견한다. 생각해보자. 레치오토를 만들려다 발효 중단 시점을 넘겨 쓴맛이 나는 실패작을 만들었을 양조자가 와인을 버려 버릴 수도 있었다. 만일 그랬다면 지금의 아마로네 와인은 결코 세상과 조우할 없었을 것이고 이탈리아 와인 브랜딩의 획을 긋는 역사는 어리석은 양조자의 실수 아래 묻혀 버렸을 것이다. 나는 아마로네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필연적인 발명품이라고 생각한다. 한낱 쓰레기가 수도 있었던 실패한 와인의 가치를 발견하고 상품화한 양조자는 그야말로 뛰어난 승부근성의 발명가이다. 원동력이 망친 와인을 재탄생 시킬 만큼 뛰어난 임기응변과 순발력일수도, 귀중한 포도의 발효액을 못내 버리지 못하던 자연에 대한 애정일수도, 혹은 오히려 레치오토 보다 뛰어난 상품가치를 한눈에 알아본 직관력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느 것이 되었든 필연적으로 창조적인 발명품을 낳게 되는 소양 아닌가 생각된다. 아마로네 탄생 비화의 주인공인 양조자의 이름이 이탈리아 와인 역사에 아로새겨지지 않은 사실이 의문이자 안타까울 따름이다.

요즈음은 대학들 간의 경쟁이 워낙 치열하고 성과에 따른 서열식 지표가 대학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가끔 뉴스에서 보도되듯이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서비스의 소비자인 학생들은 교육의 질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세계 위다 하는 식의 서열 점핑 제대로 하면 대학의 사회적 지위가 유지되는 데는 정부와 학교 경영진을 중심으로 혁신의 본질을 호도하는 고루한 사고방식이 하고 있다. 인재 양성과 진리 탐구라는 존재이유를 취업 양성소와 연구논문 찍어내는 공장이라는 역할로 해석하는 것을 무지로 이해해야 할지 아니면 무책임으로 진단해야 할지 난감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인간이 가진 인격에는 여러 가지의 카테고리가 있는데 대부분의 인격 요소가 29살 까지 성장한다는 심리학 관련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 더욱 유효한 설명인 것이, 대부분의 아동과 청소년들이 입시에 시달리며 학업에만 매진하도록 되어 있는 초, , 고교 과정 커리큘럼과 사교육 소비 위주의 일과를 생각할 때 도저히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인격의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계기도 여건도 없다. 대학 4년이 비로소 청춘, , 희망, 사랑, 우정, 윤리, 박애, 봉사, 애국심 등에 관해 부딪히고 고민할 수 있는 인생의 유일한 시기인 것이다. 이처럼 매우 중요한 인격 성장의 시기에 성장에 필요한 자양분을 공급 받지 않고서 사회에 진출을 하게 되면 페어플레이와 동료애를 모르고 출세욕과 자기 이익에만 몰입하는 비인격적 사회인이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오늘날 벌어지는 병리적 사회 현상으로부터 추론하건대 한국의 대학에서 그러한 자양분을 제대로 공급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교수도 정부도 사회도 모두 고개를 떨굴 것이다.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군부대 폭행 살인 사건과 총기 난사 사건에서 유추되는 군대 내 각종 병폐에 대해 나는 일차적 책임을 우리 사회 교육 일선에서 일한다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대학교 시절에 군 복무 중 휴가 나오거나 제대한 친구들로부터 흔히 들은 이야기는 군대는 직장과 같은 사회라는 것이다. 그것도 엄청 빡센사회라는 것. 젊은 청춘들이 경험하는 첫 번 째 사회 생활임이 분명하다. 경험해 보진 못했지만 논리와 합리가 설명되기 전에 명령과 복종이 우선시 되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인격체가 존중 되기 보다는 몰개성적인 집단의 일원으로만 인식되는 곳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생산성의 측면에서 볼 때 만일 이런 직장이 있다면 그 직장의 생산성은 엄청 떨어질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지만 군대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어떤 면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나 생각했다. 철저한 상명하복의 세계, 집단의 일사불란함이 요구되는 우리 사회의 유일한 곳이 바로 군대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바로 국가와 국민의 안보를 책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급생들과 선후배들이 군대는 사회다라며 한숨짓던 이유가 애국심이 부족해서 이었을까. 단언 건대 아닐 것이다. 그들이 한숨짓던 이유는 애국심으로 설명되지 않는 비리와 아첨과 얕은 눈치의 문화에 자신을 적응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정의한 군대는 사회다라는 말은 학교 밖 사회는 온갖 모순이 점철되었으며 군대도 이와 다를 바 없다는 한탄이었을 거다. 인격이 제대로 성장하여 애국심을 가슴에 품은 자들이라면 부하 병사에게 인분을 먹이는 등 생체실험의 마루타로 만들어 살인적 폭행을 가하는 것이 국가의 안보를 저해하는 매국의 행위라는 것을 인식했을 거다. 우정과 동료애를 고민한 인격 성장의 과정을 거친 자들이라면 울분을 참지 못하여 교묘한 총기난사 계획을 세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 사회의 교육자들은 과연 젊은 청춘들이 최초 사회 생활에서 저지르는 병폐적 행위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끔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로부터 학교도 사회다라는 한탄을 들으며 인격 성장에 필요한 교육은커녕 학생들에게 온갖 모순의 온상임을 들켜버린 대학에 서 있는 내가 한 없이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내가 창의성을 논하기 시작한 후 왜 이리 인격이 중요하다는 독백을 하는 지는 인격과 창의성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창의적 재능이 사회에서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전 사회적 인격 성장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인격에 대비하여 사회격(societality)이라 말하고 싶다. 유학과 연구 활동 때문에 외국에 살면서 외국과 한국의 사람, 문화, 사회, 환경 등을 비교해보곤 했던 경험이 있다. 유치한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소중한 비교인류학적 체험이 아니었나 싶다. 어디에선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사회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평가는 다름아닌 외국인과 같은 이방인에게서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회에 대한 생소함과 거리감이 타성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정확한 판단을 하게 한다는 논리다. 물론 나의 경우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서구 권에 한정되긴 했지만 오히려 비슷한 문화의 아시아권 보다는 한국 사회와의 차이를 제대로 깨닫게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나름의 지각력을 동원하여 체험한 서구 사회의 특징은 개성이 강하다는 점이었다. 여름에 다른 이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모피 코트를 입는 사람도, 겨울에 반팔 티셔츠를 입는 사람도 종종 있는 거리. 남들의 시선과 평가보다는 자신의 주체적인 사고와 가치관을 우선시하는 풍토. 이런 점들이 유독 내게 크게 느껴진 이유는 바로 한국 사회가 반대의 경우를 보여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다 정형화된 옷차림, 너도 나도 유행을 쫓는 . 남들의 눈길과 생각에 자신의 주체성이 흔들리는 . 그런 몰개성적인 사회가 한국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도 나도 고시를 봐서 출세하고 싶고, 너도 나도 유행하는 명품 백을 들어야 하고, 너도 나도 최신형 차를 타야 직성이 풀리는 사회. 그래서일까. 유독 한국에서는 소위 잘난 사람에 대한 질투가 심하다. 이른 질투의 정치학이 가장 작동하는 곳이 우리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 내에서 남들보다 두드러진 성과와 재능을 보여주는 사람에 대해 시기와 질투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왕따를 시키기 일쑤다. 이래서는 창의적 능력이 사회에서 발현되기는커녕 앞서 언급한 군대 문제와 같은 병폐 현상을 낳을 뿐이다. 창의적 인재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박수 쳐줄 있는 성숙한 사회격을 갖춘 사회만이 미래를 논할 자격이 있음을 강조해도 모자랄 따름이다.

한국은 사회격이 낮을까. 바로 개성이 부족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똑같은 이상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결국 경쟁을 하게 마련이고 특정인이 경쟁에서 뛰어나다 싶으면 뒤쳐진 자신을 못 견뎌 질시를 하게 된다. 미국의 온라인 결재 시스템인 페이 팔을 최초로 고안해낸 피터 티엘(Peter Thiel) 그의 책에서 창조적 독점이라는 개념을 논한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애쓰지 말고 자신만이 독점할 있는 창조적 영역을 개척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ii] 창조적 독점이라는 그의 메시지를 한국의 사회격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싶다. 남들과 똑같은 이상향을 쫓지 말고 나만의 고유한 개성을 발견하여 자신이 돋보일 있는 고유한 삶의 비전을 마련해 보자. 남들은 금전적 성취를 추구한다지만 나는 세기의 로맨스를 꿀 수 있어야 한다. 남들은 명품 백을 사려고 줄을 섰다지만 나는 아무도 찾지 않는 단골 샵에서 세상 하나뿐인 수제 백을 손에 들고 행복에 젖을 있어야 한다. 똑같이 법학을 공부하였대도 남들은 판검사와 변호사가 되기 위해 날밤 새며 고시 공부에 매달린다지만 나는 최초의 법학도 셰프가 되기 위해 날새는 줄도 모르고 명품 요리를 창조할 있어야 한다. 남들이 앞서간 발자국을 쫓으며 비틀거릴 것이 아니라 아무도 걷지 않은 전인미답의 산봉우리 최정상에 도전해 보겠다는 정신이라면 바로 사회격을 높이는 지름길이자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페어플레이의 터전이 마련되지 않을까. 창의성을 살리기 위해 사회격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하자니 아마로네 와인의 양조자가 다시 생각난다. 실패한 와인을 전대미문의 와인으로 탈바꿈 시킨 원동력은 양조자의 창의성이었고 창의적 재능이 발현될 있었던 원동력은 지역마다 개성이 강한 그래서 사회격이 높았던 이탈리아 와인의 정신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로네의 역설이 던지는 창조적 독점의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i] Bastianich, J. & Lynch, D. (2002). Vino Italiano: The Regional Wines of Italy. Clarkson Potter/Publishers: New York.

[ii] Thiel, P. (2014). Zero to One: Notes on Startups, or How to Build the Future. Crown Business: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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